신칸센 대폭파 (스피드 비교, 원작 계보)
솔직히 저는 이 영화가 1975년 원작의 속편이라는 사실도, 영화 스피드가 그 원작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도 모른 채 봤습니다. 그저 넷플릭스에서 볼 만한 작품을 찾다가 이 영화가 보였고, 개인적으로 일본어 공부 중이기도 해서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보고 나서 찾아보고서야 "아, 그래서 구조가 이렇게 비슷했구나" 싶었습니다. 넷플릭스 일본 영화 신칸센 대폭파, 아는 만큼 더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스피드와의 비교: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긴장감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서 한 편의 영화가 계속 겹쳤습니다. 1994년작 스피드였습니다. 속도가 일정 이하로 떨어지면 폭발하는 장치, 테러범의 금전 요구, 시간과 싸우는 구조대. 큰 틀이 너무 닮아 있어서 처음에는 "이거 그냥 기차 버전 스피드 아닌가"라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그런데 소재가 버스에서 열차로 바뀌는 순간, 이야기의 결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른바 폐쇄 환경(Closed Environment) — 탈출 경로가 없는 밀폐된 공간 — 이라는 개념에서 버스와 기차는 차원이 다릅니다. 버스는 도로 위에 수많은 차가 함께 달리고, 최악의 경우 승객이 뛰어내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찻길은 해당 열차 외에는 아무것도 없고, 달리는 도중 뛰어내리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반대로 통제 가능성은 기차가 훨씬 높습니다. 레일 위의 다른 열차를 모두 대피시키고, 속도와 진행 방향을 관제탑에서 직접 조율할 수 있으니까요. 버스 한 대가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것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그 대신 탑승 인원이 300명을 넘기 때문에, 만약 폭발이 현실이 된다면 피해 규모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이 긴장감의 방향이 스피드와 신칸센 대폭파를 분명히 갈라놓는 지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 긴장감의 밀도는 스피드가 한 수 위였습니다. 어렸을 때 봤던 기억 보정이 있겠지만, 신칸센 대폭파는 긴박하긴 한데 어딘가 한 박자씩 늦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속도를 줄였다 높였다 하는 장면도 있고, 충돌 직전의 아찔한 순간도 있는데, 그 직전에 이미 "이건 해결될 거야"라는 감이 오는 경우가 몇 번 있었습니다.
원작 계보: 1975년부터 이어진 이야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배경을 찾아보고는 꽤 놀랐습니다. 2025년 신칸센 대폭파는 단순한 리메이크가 아니라 1975년 원작의 직접적인 속편입니다. 같은 세계관 안에서 이야기가 이어지고, 전편의 테러 사건이 이번 사건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렸을 때 극장에서 봤던 스피드가 바로 그 1975년 원작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는 것도 이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스피드랑 비슷하네"라고 느꼈던 건 우연이 아니었던 겁니다. 원류가 같으니 구조가 닮을 수밖에 없었던 거죠. 이 계보를 알고 보면 영화 곳곳에 숨어 있는 오마주(Hommage) — 원작에 대한 경의를 담은 의도적인 인용 — 들이 훨씬 선명하게 보입니다.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50년 전 이야기를 이어받는다는 의식이 담겨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연출을 맡은 히구치 신지 감독은 2016년 신 고질라를 안노 히데아키 감독과 공동 연출했고, 2006년 일본 침몰도 같은 주연 배우 쿠사나기 츠요시와 함께한 감독입니다. 재난 영화에서 대규모 통제 시스템과 절차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방식이 그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그 색깔이 뚜렷하게 살아 있습니다.
특히 CG 완성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2025년식으로 재해석된 폭발 장면과 열차 질주 시퀀스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았습니다. 히구치 감독의 스케일에 대한 감각이 열차의 속도감과 맞물리면서, 영화를 보는 내내 마치 그 칸에 같이 갇혀 있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습니다. 이 부분만큼은 정말 잘 만들었다는 말 외에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전반부와 후반부, 그리고 범인 서사 문제
영화는 크게 두 덩어리로 나뉩니다. 전반부 한 시간은 거의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신아오모리에서 출발한 열차가 도쿄를 향해 달리는 동안, 대책 본부가 세워지고 첫 번째 위기가 연속으로 터집니다. 이 부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갑니다.
문제는 후반부입니다.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서사가 급격히 늘어집니다. 처음에는 "이걸 어떻게 수습하려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설정이 황당하게 느껴졌습니다. 범인의 동기와 배경을 설명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다 보니, 관객이 궁금해하는 부분을 한참 뒤에야 풀어주는 구조가 되어버린 겁니다.
일본 재난 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특성 중 하나가 바로 집단 대응 서사(Ensemble Narrative)입니다. 한 명의 영웅이 모든 걸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교차해서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이건 일본 콘텐츠만의 분명한 개성이고, 저는 이 방식을 꽤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그 집단 서사의 분량이 범인 서사에 밀려 후반부에서 조금 희석된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30분은 다시 살아납니다. 범인의 서사가 결국 수습되고, 대책 본부와 열차 안이 다시 맞물리면서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구간은 꽤 잘 마무리됩니다. 특히 열차 칸을 분리하는 장면 — 분리하자마자 폭발이 이어지는 그 타이밍 — 은 스피드의 버스 하부 점검 장면처럼 황당하면서도 묘하게 쾌감이 있었습니다.
아래는 이 영화에서 전반부와 후반부를 나누는 핵심 요소를 정리한 것입니다.
- 전반부: 폭탄 발견, 속도 통제, 레일 위 충돌 위기 — 긴장감이 끊기지 않고 연속됩니다.
- 중반부: 범인 추적과 정체 노출 — 서사가 급격히 느려지며 몰입이 흔들리는 구간입니다.
- 후반부: 범인 동기 설명 — 질질 끄는 느낌이 있지만 결말로 가면서 수습됩니다.
- 클라이맥스: 열차 칸 분리와 최종 대응 — 다시 긴장감이 살아나며 마무리됩니다.
한국영화와의 비교, 그리고 현실적인 걱정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자연스럽게 한국 영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 영화가 일본 영화보다 앞서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지금 이 영화를 보면서 그 생각이 꽤 흔들렸습니다. 적어도 이 규모의 재난 블록버스터를 지금 한국에서 만들 수 있겠냐고 물으면, 선뜻 "가능하다"고 답하기 어렵습니다.
2023년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미국에서도 흥행에 성공했고, 아카데미 시각 효과상(Academy Award for Visual Effects) — 특수 시각 기술의 완성도를 평가해 수여하는 상 — 을 수상했습니다. 이 상은 할리우드의 쟁쟁한 블록버스터들과 경쟁해서 받은 것입니다. 일본 영화가 이 상을 받는다는 게 솔직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한국 영화가 이 상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언제 올까를 생각해보면, 현재 상황은 더 현실적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한국영화산업은 지금 구조적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 제작된 영화들이 줄줄이 창고에 묶여 있다가 최근에서야 개봉하고 있는데, 그 재고가 거의 소진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 자료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한국 영화 제작 편수 자체가 눈에 띄게 감소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새로 만들어지는 영화가 줄어들면, 몇 년 후 극장가에서 선보일 한국 영화가 없어지는 상황이 현실이 됩니다.
넷플릭스와 같은 OTT 플랫폼(Over-the-Top Platform) — 인터넷을 통해 콘텐츠를 직접 제공하는 스트리밍 서비스 — 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일본은 넷플릭스를 통해 신칸센 대폭파 같은 대작을 글로벌 시장에 직접 선보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이번 영화가 그 좋은 사례입니다. 한국도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활발하게 더 다양한 한국 영화를 글로벌 시장에 보여 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CssP7zh_Tt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