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가, 부모의 사랑과 현실 속 의료 환경, 그리고 우리가 놓치고 있던 감정
영화가 끝난 뒤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이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점, 그리고 아이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던 작품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다 보니 아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괜히 더 마음이 쓰이고 쉽게 지나칠 수가 없다. 사실 영화의 자세한 줄거리나 배경지식 없이 보기 시작했는데, 초반에는 흔히 말하는 ‘빌런’을 찾으며 영화를 봤던 것 같다. 저 사람이 문제인가,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가 악역인가 싶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는 그런 생각 자체가 무의미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영화에는 진짜 빌런이 없었다. 누군가를 쉽게 미워할 수도, 손가락질할 수도 없는 이야기였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고 있었고, 살아내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너무 절박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싱글대디(싱글맘)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무게
특히 명우 아빠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답답하게 느껴졌던 장면들도 있었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사람이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는지가 보였다. 아픈 아이를 혼자 돌본다는 건 단순히 보호자의 역할을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생계를 유지해야 하고, 병원과 현실을 동시에 버텨야 하며, 아이의 감정까지 품어야 한다.
아이가 아플 때 부모는 늘 같은 마음일 것이다. ‘안 아팠으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가능한 모든 지원을 해주고 싶어진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치료를 받게 하고 싶고, 작은 위험도 막아주고 싶어진다. 부모의 사랑은 당연히 아이를 위한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영화는 그 사랑이 때로는 아이들에게 ‘창살 없는 감옥’이 될 수도 있다는 현실을 보여줬다. 부모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아이는 그 안에서 자신의 삶과 감정을 잃어가기도 한다. 물론 아이들도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한다. 자신 때문에 부모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른인 우리조차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어려운데, 아픈 아이가 그 모든 감정을 온전히 감당하는 건 얼마나 버거운 일일까.
누구의 잘못도 아니기에 더 슬펐던 영화
영화를 보면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던 건 누군가를 원망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의료진도, 보호자도, 부모도, 환자도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실은 그 최선만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답답했고 더 먹먹했다.
김미라(최지우 역)라는 인물도 처음에는 조금은 오지랖처럼 느껴졌다. 왜 저렇게까지 할까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녀에게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누군가는 반드시 나서야 했고,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야 했던 것이다.
영화 중간에 김미라가 혼자 조사를 받으러 다니는 장면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동안 그녀에게 도움을 받았던 환우 보호자들이 등장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혼자 괜히 답답한 마음도 들었다. ‘왜 아무도 함께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영화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담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 현실 속에서는 분명 말 못 할 사정과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환경은 누군가의 절박함 덕분이다
영화 속에서 가장 마음 아팠던 건 결국 아픈 사람이 직접 뛰어야만 했던 현실이었다. 내가 아픈 건 내 잘못이 아닌데, 치료받기 위해서도 싸워야 하고,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현실은 너무 막막하게 느껴졌다. 얼마나 답답하고 깜깜했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 절박함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환경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누군가는 힘들게 싸웠고, 누군가는 외롭게 버텼으며, 또 누군가는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조금 더 나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단순히 눈물을 자아내는 감동 영화가 아니었다. 부모의 사랑, 환자의 고통, 제도의 현실, 그리고 사람의 용기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도 한동안 쉽게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던 이유는 아마 그 질문들이 너무 현실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너무 가두고 있는 건 아닌지, 아이의 마음보다 내 불안이 앞서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한 편의 영화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