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우와 오연아의 넌센스 (두 인물, 믿음, 빛과 그림자)

솔직히 영화관을 나오면서 "이 사람, 좋은 사람이야 나쁜 사람이야?"라는 질문을 이렇게 오래 붙들고 있었던 건 꽤 오랜만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강순규라는 인물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더라고요. 그 찜찜함이 싫지 않았지만, 찝찝했던 그런 영화였습니다.

얼음과 불이 부딪히는 두 인물의 온도 차

영화는 물 위에 떠 있는 시체로 시작됩니다. 자살인지 타살인지조차 불분명한 이 오프닝 시퀀스(opening sequence)란 영화의 첫 장면 흐름을 뜻하는데, <넌센스>의 오프닝은 그 자체로 영화 전체의 질문을 압축해 놓은 것 같았습니다. 보는 순간 "이거 예사롭지 않겠다" 싶었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주인공 유나는 손해사정사(損害査定士)입니다. 손해사정사란 보험 사고 발생 시 실제 손해 규모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산정하는 전문직을 말합니다. 직업 자체가 이미 냉정함을 요구하는 사람인데, 유나는 그 냉정함이 직업적 태도를 넘어 삶 전체에 배어 있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아버지의 빚으로 인해 빚쟁이들에게 시달리고, 그 빚을 갚기 위해 성과를 내야 하는 사람. 처음부터 이렇게 무미건조한 사람이었을리 없다고 저는 봤습니다. 그게 제 생각이었는데, 영화도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반대편에 있는 강순규는 잘 풀리지 않는 생활형 개그맨입니다. 텐션(tension)이란 인물이 내뿜는 심리적 에너지의 밀도를 뜻하는 말인데, 순규의 텐션은 극 내내 하이 레벨을 유지합니다. 상대의 텐션을 끌어올리는 역할까지 자처하면서요. 솔직히 처음에는 이 인물이 그냥 밝고 에너지 넘치는 캐릭터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면 그 밝음 어딘가에 뭔가 끈적한 것이 섞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합니다. 박용우 배우가 그 미묘한 지점을 정말 잘 잡아냈습니다.

오아연 배우 역시 오프닝부터 존재감이 확실했습니다. 뜨겁게 끓고 있는 상대에게 한 치의 감정도 흔들리지 않는 냉소를 일관하는 장면에서, 이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말 한마디 없이 다 각인되더라고요. 그 연기 하나로 영화 전체의 분위기가 세팅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제가 직접 보니 예상보다 훨씬 강렬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의 여러 얼굴

영화에서 저를 가장 오래 붙들었던 건 사실 스릴러적 긴장감보다 이 질문이었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강순규와 관련된 사람들이 하나둘씩 보험금 수령자를 그로 지정해 두고 사망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를 의심하게 됩니다. 그런데 동시에 영화는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근거로 그를 의심하고 있냐고요.

이 지점에서 저는 회사 다니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꾸며진 친절함으로 일을 처리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누군가에게는 그게 참을성 있는 모습으로 기억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속을 모르겠다는 인상을 준 것 같습니다. 결국 같은 행동도 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는 것을 그때 꽤 실감했거든요. 강순규도 그런 인물입니다. 그를 어떻게 보느냐는 결국 관객 각자의 삶의 경험치에 달려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믿음의 문제는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합니다. 정리해보면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뉩니다.

  1. 근거 없이 의지하는 맹신(盲信) — 무당을 찾아가 저승사자를 달래달라고 비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맹신이란 이성적 판단 없이 무조건적으로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2. 살아남기 위한 선택으로서의 믿음 —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라고 말하는 인물처럼, 믿음이 유일한 출구일 때 인간은 어디까지 기대려 하는지 영화는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3. 의심을 유보하는 믿음 — 강순규가 사기꾼인지 아닌지 끝까지 단정짓지 못하는 윤나의 태도가 여기 해당합니다. 저 역시 끝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굳이 따지면 나쁜 쪽이 아닐까 싶었지만, 그것도 확신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믿음과 관련된 심리학 연구들을 보면, 사람은 불확실한 상황일수록 자신이 믿고 싶은 방향으로 정보를 해석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을 강하게 보입니다. 확증 편향이란 이미 가지고 있는 믿음이나 기대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인지적 오류를 뜻합니다. 출처: 미국심리학회(APA)에 따르면 이 편향은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강력한 사고의 왜곡 중 하나로, 넌센스의 인물들 거의 모두가 이 함정 안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성선설과 성악설, 인간의 본성이 원래 착하냐 나쁘냐는 오래된 질문입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그 이분법보다는 타고난 성향과 환경이 맞물리는 방식이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나가 냉혹한 사람처럼 보이는 건 그녀가 원래 그런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이니까요. 같은 상황에 놓여도 반응은 사람마다 전혀 달라지는 법이고요.

빛과 그림자, 그리고 연출이 말하는 것

영화를 보면서 카메라가 유나의 발을 자꾸 담아낸다는 걸 알아챈 순간, 그게 단순한 앵글 선택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란 화면 안에 담기는 모든 시각적 요소들의 배치를 뜻하는 영화 연출 용어인데, <넌센스>는 이 미장센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꽤 정교하게 표현합니다. 아래로 하강하는 카메라는 윤나의 무너진 삶의 방향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반대로 순규가 있는 공간은 상대적으로 밝게 처리됩니다. 이 빛과 그림자의 대비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큐어>에서도 볼 수 있었던 방식인데, 두 인물의 정체성을 조명 하나로 도식화하는 겁니다. 그런데 극이 흘러갈수록 그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기 시작합니다. 유나의 동료가 "요즘 얼굴이 되게 밝아 보였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 순간, 저는 이 교차가 얼마나 정교하게 계산된 것인지 실감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연출 디테일은 두 번 봐야 비로소 제대로 보이더라고요.

영화 속 강순규와 유나 부친의 관계도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캐릭터 공명(character resonance)이란 서로 다른 인물들이 공통된 내면적 특성이나 처지를 공유하며 관객에게 울림을 주는 서사 기법을 말합니다. 두 사람 모두 사기꾼이라는 의심을 받는다는 점에서 이 공명은 꽤 분명하게 작동합니다. 그리고 그 공명이 유나라는 인물의 선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추적하는 것이, 저에게는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관람 포인트였습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스릴러 장르 영화의 관객 만족도 중 캐릭터 설득력이 서사 완성도와 함께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넌센스>는 바로 그 두 가지를 모두 갖추려 한 흔적이 곳곳에 보였습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결국 강순규가 나쁜 사람인지 좋은 사람인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저는 나쁜 쪽에 조금 더 무게를 뒀지만, 그게 제 기준에서 나온 판단이라는 것도 압니다. 어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이 영화의 결말은 사람마다 전혀 다른 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재관람을 권하고 싶습니다. 처음에 그냥 지나쳤던 빛의 방향, 카메라의 각도, 인물들의 시선이 두 번째에는 전혀 다르게 보일 테니까요.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KjE3PZvWb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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